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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 ‘다시 만나는 이태석’
이승훈 기자 | 승인 2020.01.14 13:06


 

 

“한국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신부님은 언제나 주위 사람들을 웃게 하는, 유쾌하고, 대단히 재미있는 분이에요.”

우리는 ‘이태석 신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도 감동, 경건, 인류애, 헌신, 그리고 그를 떠나보낸 슬픔 등이 아닐까. 하지만 남수단 톤즈에서 이 신부와 함께 생활했고, 이 신부의 뒤를 따르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한 존 마엔 루벤(32)씨는 그보다도 ‘웃음’이 먼저라고 말한다. 이 신부 선종 10주기를 맞아 이 신부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미처 만나지 못했던, 이 신부를 다시 만나봤다.

■ 개구쟁이, 쫄리 신부

“개구쟁이였어요. 항상 장난 많이 치고, 긍정적이고.”

이 신부와 대학 시절 친밀하게 지냈던 동기 양종필(58·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씨도 이 신부의 모습에서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신부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먼저 ‘개구쟁이 이 신부’의 모습을 기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별명을 붙이고, 장난기 가득한 농담을 건네고, 시험기간 조차도 농구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던 이 신부. 이 신부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피어오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장난기만 많았던 것이 아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 재능이 넘쳤던 이 신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신부와 동기로 수단 선교 전까지 동고동락했던 백광현 신부(살레시오회·한국관구 부관구장)는 아직 회원도 아닌 ‘지원자’ 신분으로 살레시오회에 처음으로 그룹사운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던 이 신부를 회상했다. 백 신부는 “1992년 영광 모래미의 살레시오회 캠프장에서 지원자였던 이 신부의 제안으로 살레시오 캠프 사상 처음으로 그룹사운드가 도입됐다”며 “캠프가 끝나고도 매주 찾아올 정도로 아이들이 좋아했던 캠프였다”고 회고했다.

이 신부의 1년 후배로 이 신부의 선교활동을 지원했던 김상윤 신부(살레시오회)는 이 신부에 대해 “사진만 봐도 늘 가운데 자리였다”면서 “신학생 때부터도 늘 자신감에 차 활동하면서도 교만으로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수단 아이들의 돈 보스코

“네가 돌을 들고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있으면 (다이아몬드를 줍기 위해) 돌을 버리지 않겠니?”

김상윤 신부가 이 신부에게 “굳이 신부가 아니어도 의사로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겠냐”고 묻자 이 신부는 이렇게 답했다. 이 신부에게 청소년을 위해 헌신하는 사제의 삶은 ‘다이아몬드’였던 것이다.

사실 이 신부가 처음 살레시오회에 왔을 때 노숭피 신부(살레시오회)는 “당신은 여기 오면 안 된다”며 의료 사도직을 수행하는 수도회를 추천했다. ‘의사’라는 재능을 썩히기 아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신부는 다시 돌아와 “의사가 아니라 청소년을 위해 살고자 한다”며 입회를 희망했다고 한다.

이 신부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 신부 활동 당시 톤즈를 방문해 의료봉사를 한 신경숙(데레사·순천향대 구미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씨는 2011년 ‘톤즈의 돈 보스코 이태석 신부의 삶과 영성’ 심포지엄에서 “신부님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떠오르는 모습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라며 “아이들은 ‘쫄리 신부님은 내 편이 될 거야’라는 믿음이 아닌, ‘그분은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줄 수 있을 거야’란 생각으로 신부님을 찾아오곤 했다”고 말했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정이 넘치는 그런 학교 말이다.”

이 신부의 저서 「친구가 되어주실래요」에 나오는 이 문장은 무엇보다도 이 신부가 요한 보스코 성인을 따르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이 신부가 말하는 학교는 바로 요한 보스코 성인의 ‘오라토리오’의 장소다. 오라토리오는 요한 보스코 성인이 청소년들과 신뢰를 맺고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활용한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일컫는 말이다. 김상윤 신부는 “이 신부님이 세운 학교는 학교면서 성당, 성당이면서 교실, 교실이면서 운동장이라는 오라토리오의 학교를 구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수단 아이들의 친구가 된 이 신부님은 요한 보스코 성인의 이상을 실현시키며 사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청소년을 사랑한 이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의사로, 음악가로, 교사로, 그들에게 친구가 돼줬지만, 무엇보다 그는 선교사의 삶, 하느님의 사랑을 전한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

지난해 선종한 이 신부의 친형 이태영 신부(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는 “이 신부는 선교사로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해야 함을 잘 깨닫고 있었다”면서 “이 신부는 그 사랑의 하느님을 닮고 싶어 했고,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실천함으로써 그 사랑의 하느님을 전하고자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 신부는 생전에도 부단히 ‘사랑’을 말했다. 이 신부는 자신의 책에 서명할 때마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라고 적었다. 요한1서의 말씀에 ‘정말’이라는 말을 덧붙여 사랑을 더욱 강조했던 것이다. 백광현 신부는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시라는 그 체험이 이 신부님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설명했다.

김상윤 신부는 “이 신부님은 자주 ‘이들(톤즈의 아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여기 와보면 무엇이 삶인지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이 신부님을 움직인 것은 어떤 사명감이나 자기헌신이라기보다는 ‘사랑’이었고 ‘정말 사랑’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진과 기사는  살레시오회 제공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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