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교육 교육컬럼
<투모르 컬럼>뉴욕의 작은 거인, 라과디아
이한규 청소년 교육전문가 | 승인 2022.06.30 14:18

<투모르 컬럼> 이한규청소년 전문가  >피오렐로 라과디아 Fiorello La Guardia(1882~1947)는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했던 사람이다. 키가 157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단구短軀였지만, 그는 아주 지혜로웠고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시장이 되기 전에는 법원 판사로 있었다.

경제 대공황大恐慌으로 미국인들이 춥고 어두운 나날을 보내던 1930년 어느 겨울날,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던 한 할머니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즉결재판에 회부되었다. 당시 라과디아는 뉴욕시의 임시 치안 판사를 맡고 있었다.

할머니는 실직한 사위가 가출해버린 뒤 병들어 누운 딸을 대신해서 어린 손녀들을 키워오다가, 마침내 음식과 돈이 모두 떨어져 손녀들에게 먹일 게 없어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이었다. 할머니의 처지가 불쌍하긴 하지만, 하루도 빵을 도둑맞지 않는 날이 없다면서 빵가게 주인은 절도범을 엄벌해 달라고 주장했다.

방청객들은 빵가게 주인이 너무 몰인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판사는 할머니를 빵가게 주인과 다르게 보리라고 기대했다. 자기 배를 채우려는 것도 아니고, 손녀를 먹이려고 한 할머니에게 관용을 베풀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

“왜 훔쳤습니까?”

“예,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돈이 없는데, 나이가 많다고 아무도 써주지 않았습니다.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고 배식도 끊겨 어린 손녀들과 4일간 굶었습니다.

제가 굶는 건 견딜 수 있지만, 손녀가 굶는 걸 보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빵가게 앞을 지나다가 마치 바늘이 자석에 끌리듯이 저도 모르게 가게로 들어가 빵 한 덩어리를 훔치고 말았습니다.”

“그건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알고 있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할머니는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빵을 훔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네? 아, 그…그건 약속할 자신이 없습니다.”

판사는 법이 요구하는 공의公義를 무시할 수도 없었고, 너무나 딱한 상황에서 굶고 있는 손녀를 위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할머니를 법대로만 집행할 수도 없었다. 법도 사람을 위하여 만든 것인데, 법 적용에 있어서 형편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판사는 할머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법이 요구하는 공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지 잠시 고민을 한 후에 최종 판결을 내렸다.

“피고의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도둑질은 잘못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누구든지 죗값을 내야 합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므로 피고 애니 돌로레스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비록 남의 빵을 훔치는 도둑질은 했지만 노인의 사정을 감안해서 관대하게 판결이 나올 것으로 방청객들은 예상했다. 그런데 단호한 판사의 선고에 방청석을 메운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라과디아 판사는 이어서 말했다.

“피고는 재판정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굶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피고가 빵을 훔친 것은 피고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피고가 생존을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뉴욕 시민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래서 본 판사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는 동시에 이 법정에 있는 시민 방청객들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은 죗값’으로 각각 50센트의 벌금을 선고하는 바입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먼저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넣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경무관에게 그 모자를 건네주면서 모든 방청객들에게도 벌금을 거두라고 하였다.

법정에 앉았다가 난데없이 억울한(?) 50센트의 벌금을 선고받은 방청인들은 모두 웃음 가득한 얼굴로 ‘죄 없이 받은 처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거둔 돈이 57달러 50센트였다.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쥔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리고는 너무 송구스럽고 고마운 마음에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할머니는 법정을 떠났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법정 앞에는 햇살이 밝게 비치고 있었다.

세상에는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은데, 엄정한 법대로 죄를 다스리면 세상이 너무 삭막해진다. 그렇다고 지은 죄를 엄정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세상은 혼탁해지고 어지러워진다.

세상에는 법도 필요하고 따뜻한 사랑도 필요하다. 사실 크든 작든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허물이 있고 실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누군가를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라과디아는 그 할머니를 정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딱한 처지를 깊이 생각하고 헤아렸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들 한다. 잘못된 죄는 다스리면서 죄인을 긍휼히 여기고 죄에서 벗어나게 해준 판사 라과디아의 판결은 정말 지혜로웠다.

머리에는 공의가, 가슴에는 사랑이 담겨 있는 재판장이 진정 훌륭한 재판장이다. 법은 사람들의 행동만 규제할 뿐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다. 법은 차갑지만 사랑은 따뜻하다.

판사로 재직할 때 라과디아는 공정하면서도 빈민들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많이 내려 명판관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정치인 시절에는 청렴결백한 행실과 진보적인 성향으로 세간에서 많은 칭송을 들었고, 때문에 ‘뉴욕의 영웅’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 후로도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원칙을 고수하며 부정부패와 맞서 싸웠고, 시민들의 삶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16년간 판사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얼마 후 그는 법조계를 떠나 뉴욕 시장에 출마했다. 그는 각종 범죄 행위로 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치안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뉴욕 시민들은 그를 환호했다.

결국 라과디아는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1933년 뉴욕 99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뉴욕에 활개를 치고 있던 마피아 조직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취임식 날, 라디오 방송국에서 마이크를 잡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으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그는 마피아와 손을 잡은 부패 경찰들을 몰아내었고, 마피아의 돈줄이었던 도박용 불법 슬롯머신들을 다 몰수해버렸다. 이에 마피아 쪽에서 라과디아 시장에게 온갖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으나, 그는 흔들리지 않고 부정부패를 없애는 데에만 전력을 다했다.

마침내 마피아 조직은 와해되었고, 뉴욕의 치안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가 뉴욕 시장으로 재직하던 동안, 그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의 하나였던 뉴욕시는 최고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뉴욕 시장 라과디아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라과디아를 차기 당 지도자로 추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라과디아는 어떤 사안을 놓고 자신이 속한 공화당의 정책을 버리고 상대 정당인 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되었고, 공화당 사람들은 라과디아가 배신자라며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발생된 대규모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이 시급했고, 그는 비록 상대 당이지만 민주당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내건 뉴딜 정책이야말로 뉴욕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민생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약 11억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뉴욕의 경제를 회복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처럼 라과디아 시장은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던 뉴욕시민들에게 ‘인내와 불굴不屈’이라는 두 가지 덕목을 요구했고, 뉴욕 시민들은 탁월한 리더십과 따뜻한 가슴을 가졌던 그의 신념을 따라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대공황의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그 후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1945년까지 시장을 세 번 연임하면서 뉴욕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든다.

그는 시장 임기가 끝나고 2년 뒤인 1947년에 안타깝게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뉴욕시는 모든 공공건물에 30일간 조기를 게양하며 그를 추모했고,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그는 때로는 화재 현장에 달려나가고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날아다니는 등 모든 문제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타고난 투사, 그의 상대가 히틀러든 길가의 시정잡배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맞섰다. 뉴욕의 수많은 공공건물만큼이나 많은 역할을 했던 이 작은 거인이 숨을 거두었다.”

라과디아 시장이 세상을 떠난 후 뉴욕시민들은 그의 덕을 기려 퀸즈에 있는 공항을 ‘라과디아 공항La Guardia Airport’이라고 명명했다. 맨해튼에서 13킬로미터쯤 떨어진 그 공항 안에는 그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늘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어서 ‘작은 꽃Little flower’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라과디아는 1993년 미국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역사상 재임했던 역대 시장 중 ‘가장 위대한 시장’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지역의 한 40대 부장판사가 “여자가 말이 많으면 안 된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 판사는 이전에도 증인으로 출석한 60대 노인에게 혼잣말로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한 말이 마이크를 통해 법정에 다 들려 막말 판사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징계를 받았다.

최근에는 피고인에게 군대식 얼차려를 시킨 판사가 있는가 하면, 39세 판사가 법정에서 아버지뻘 되는 69세의 원고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느냐.”고 질책한 일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법정에서의 ‘막말’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누가 진짜 버릇이 없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고 사법고시 합격해서 판사가 되고 부장판사가 되었어도, 사람이 자기의 본 모습을 아는 건 쉽지 않은가 보다. 이런 사례들은 사회적 성공을 인생의 성공과 동일시하는 우리나라 교육과 사회 시스템의 기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아름다운 향기를 발한 라과디아 같은 ‘작은 꽃Little flower’들이 우리 사회에도 여기저기서 많이 피어나 더 아름답고 더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글쓴이: 이한규 청소년 교육 전문가

그는 보수적인 유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고 교사가 되어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철학과 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신문과 잡지 매체에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다. 전국 대안학교 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으로 있으며, 최근에는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과 개인 상담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이한규 청소년 교육전문가  webmaster@shinatv.com

<저작권자 © 리강영뉴스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한규 청소년 교육전문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라남도 여수시 좌수영로 40  |  대표전화 : 061-662-3800  |  팩스 : 061-662-0004
등록번호 : 전남 아00277  |  발행인 : 이강영  |  편집인 : 이강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강영
Copyright © 2023 리강영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