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하철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경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뉴스를 빈번하게 접해야 했다. 누군가 등을 밀어 떨어뜨렸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있었고,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살이었다. 그렇게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시작했고, 지하철에서의 자살은 줄어들었다. 대신 다른 곳에서 자살했기 때문이다.

고장 잦은 스크린도어

애초 스크린도어 사업은 이명박 정부 당시 공기업 예산을 조기에 사용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임기 내에 성과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공사를 밀어붙였다. 기술력과 품질 검증 없이 공사를 시행했고, 최저가낙찰제를 통해 업체를 선정했기에 부실시공이 우려됐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는 외려 시공업체는 비호하고 공사비는 선지급하면서 논란과 의혹을 증폭시켰다. 심지어 김상돈 전 사장 등 원청 간부들은 공사관련 비리로 감사와 수사까지 받았다. 감사에서 징계를 받은 서울메트로 직원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스크린도어 설치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대비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업이었다. 승객의 사고를 막고, 화재시 연기확산을 막을 수 있으며, 실내 공기의 질을 향상시키고, 소음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산 손실에 부실공사, 비리 의혹까지 겹쳐져 총체적 난국이 벌어졌다.

현재 설치된 스크린도어는 여러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선 고장 건수만 해도 매년 2000~3000건에 다다른다. 일평균 고장 건수는 2013년 6.60건, 2014년 7.81건, 2015년 8.86건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이처럼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스크린도어 유지관리를 외주화하는데, 이는 오히려 안전하고 안정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지난 5월 28일 사고 당시에도 서울메트로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인은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참혹하게 외상을 입었고, 얼마 후 사망했다.

무엇이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2016년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구의역 승강장에서 열차와 스크린 도어 사이에 용역업체 은성PSD 직원 김모(19,남)씨가 끼여 사망했다. 이 사고로 서울 메트로는 성수역에서 잠실역 방면 내선 운행을 20분 동안 중지했으며, 오후 6시 23분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위험성이 높은 작업은 열차운행이 끝나는 심야에 이루어지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 은성PSD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수리기사는 접수 1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했다. 따라서 고인은 사고 당일 5시 58분까지 현장에 도착해야 했고, 5시 52분 가까스로 도착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5시 20분경 을지로4가역에 또 다른 고장 신고를 받았다. 구의역에서 을지로4가역까지는 약 20분이 걸리는데 고인은 6시 20분까지 을지로4가역에 가야했다. 따라서 고인과 동료가 2인 1조라는 매뉴얼을 지키다간 1시간 타임리미트를 어길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혼자 작업해야 했던 것이다. 오후 5시 57분, 고인은 작업을 하던 도중 달려오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변을 당했다. 보통 이럴 때 열차의 속도를 현저하게 늦추거나, 구의역 측에서 도와주기도 할 수 있었지만, 수리 중이란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킬 수 없는 매뉴얼, 강요된 업무조건, 통제되지 않는 시스템 모두가 열아홉 하청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6월 2일 현재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의 내선순환 쪽 플랫폼의 모습. 참사 직후부터 시민들은 이곳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 달라진 분위기

알려진 바처럼 서울메트로 사측은 사고의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기려 했다. 고인이 알량한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고, 그러니 원청으로서 보상 책임이나 외주화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3년 사이 2호선에서 일어난 두 번의 죽음에서도 그렇게 넘겼으니 이번에도 으레 얼렁뚱땅 넘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세월호 참사와 쉴틈 없이 터져나오는 노동재해로 인해 우리는 달라졌고, 문제의 원인이 구조와 제도에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최근 억울한 죽음들이 연이어 알려지고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대중들이 SNS를 넘어 분노와 추모, 포스트잇을 통한 목소리내기와 연대라는 행동의 양식을 찾아내자 상황은 달라졌다. 부리나케 정치인들이 모여들었고, 두 번의 죽음이 있기 까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현장에 찾아와 사죄와 문제해결을 언급했다.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던 조선일보도 기조를 바꾸고 정정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유관 노동조합, 진보정당 및 사회운동단체들도 모였다. 노동조합이 먼저 나서서 31일 고인의 모친과 함께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튿날 지하철 2호선 사망재해 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지난 2일 서울시와 메트로 원청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민주노조’가 반성해야 할 것

불의의 사고,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열심히 일한 죄로 죽은, 아직 젊음을 만끽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열아홉 살의 하청노동자는 미디어에 보이는 것처럼 ‘불쌍하고 어린 김군’이 아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가입한 은성PSD노조의 조합원이었고,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최근 두달 쉬는 날마다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서 “갓졸업한 공고생 자르는 게 청년일자리 정책인가!”라고 적힌 노동조합 피켓을 들고 소리쳤던 ‘싸우는 노동자들’ 중 하나였다.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은 갈수록 고령화되는 가운데 청년실업과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고인은 이런 민주노총의 열아홉 조합원, 노조운동의 젊은 희망이었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채 스물이 되기 전부터 열악한 일터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하청노동자였다.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닐 정도로 일상이 각박했지만, 냉소하지 않고 희망을 찾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희망의 근거를 잃은 것이다.

문제의 구조적 원인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공백을 찾고 반성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나마 노조라는 울타리도 없는, 자신의 권리를 알고 집단적 힘을 통해 투쟁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 청년노동자들이 대다수다.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고 있는 오늘날의 민주노조운동은 무엇보다 이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자원과 역량을 비약적인 수준으로 집중해 노조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이들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드러나지 않는 산업재해, 억울한 죽음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비극을 멈출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모든 노동자를 위한 것이란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중단없이 싸워야 하는 이유

기업살인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하청산재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묻는 법안 개정 등 법제도적 개선도 중요하다. 정치인들의 의지만으론 안 된다. 사안에 대한 관심이 줄면 반대편의 로비가 더 힘을 받기 일쑤다. 이것이 결실을 맺으려면 지속적으로 사회운동적인 저항이 벌어져야 한다.

미국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 화재 이후 대응이 좋은 사례다. 의류공장의 끔찍한 화재로 많은 노동자가 죽자 많은 시민, 노동자들은 수십만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의회를 압박했다. 이로 인해 59차례의 공청회가 열렸고, 시민안전위원회와 공장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노동조합들 역시 안전문제를 두고 집중적으로 싸웠고, 결국 노동자 재해 보상에서 고용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한 법제도가 도입됐다. 이는 이후 세계 각국이 도입한 산업재해보상법과 사회보장법의 토대가 되었다. (참조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박상은, 사회운동)

이번 구의역 사고가 터지기 무섭게 남양주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 건설노동자 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치는 큰 사고였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런 재해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이번 사고는 비단 지하철2호선, 구의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산재공화국 한국사회에 만연한 고질적 문제다. 그치지 않는 연대, 중단없는 싸움이 필요한 때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가로막는 모든 모순에 맞서 싸우자.

홍명교 오늘보다 편집위원  webmaster@shina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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