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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興 여다지 붉은 바다 살아 숨쉬는 '소설풍경'共感, 장흥으로 떠나는 문학기행. 한국 문학의 거목을 찾아서
리강영뉴스닷컴 | 승인 2015.07.17 07:35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등 장흥이 배출한 문인들의 '문학의 샘'이자 '창작의 고향'인 장흥의 바다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누구라도 저 풍경을 보면 시 한수, 글 한자락은 쏟아낼것 같다.

소설가 한승원의 집필실인 해산토굴 앞 여다지해변에는 '한승원 문학 산책로'가 반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비릿하고 살아 있는 그의 언어들을 더듬어 가는 600m의 산책길이다.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이청준 '눈길' 중)

책 속 이 한 대목에 그만 마음을 뺏겨버렸습니다. 어머니가 떠올라서입니다. 말만 들어도 눈앞이 흐려지는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인 어머니 말입니다. 모두 가난하던 시절 어머니와 아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따라 갑니다.

문림(文林)이라 불리는 전라남도 장흥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풍경이 되고 이야기가 되는 그런 곳입니다. 장흥 문학의 전통은 역사가 깊습니다. 기봉 백광홍(1522~1556)의 '관서별곡'이 장흥에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역사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송기숙,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등 한국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태어나 걸출한 작품을 세상에 내놨기 때문입니다.

 

장흥은 그들의 문향(文鄕)으로써 뿐만 아니라 작품 속 깊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천관산과 득량만을 비롯한 장흥의 산과 바다는 이청준의 '눈길'과 '축제', 한승원의 '불의 딸'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등 여러 소설의 생생한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곽재구 시인은 '열애처럼 쏟아지는 끈적한 소설의 비'가 내리는 땅이라고 장흥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흥을 여행하다보면 소설의 한 장면이 펼쳐질 것만 같고 어디선가 주인공이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문학기행은 장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따라가는 여정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그런 여행지입니다.

 

휴가를 앞둔 이때 문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행가방 속에 책 한 권을 살짝 넣어 보자는 이유에서입니다. 소설, 시, 전문서적 등 무엇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가방 속에 담긴 한 권의 책으로도 알차고 넉넉한 여행길이 될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장흥여행은 이청준선생의 문학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목마을 이청준생가에서 대표작인 '눈길'과 젊은시절의 사진, 마당의 장독대 등을 마주한 풍경은 아름답다.

◆한국문학의 거목 이청준을 따라가는 문학탐방로 '눈길'

장흥이 낳은 문인 중에서 고향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 작가가 고(故) 이청준(1939~2008)이다. 송기숙 소설 '녹두장군', 한승원의 '포구', 이승우 '샘섬' 등 장흥 출신 작가가 장흥을 배경으로 쓴 작품도 많다. 그러나 이청준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대표작 '눈길'은 물론이고 '축제' '선학동 나그네' 등 20편이 넘는 작품이 고향 땅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임권택 감독이 이청준 소설 여러 편을 영화로 제작했는데 그중 '축제'와 '천년학(원작 선학동 나그네)'이 장흥에서 촬영됐다.

발길이 가장 먼저 닫는 곳은 진목마을의 이청준 생가다. 장흥읍에서 천관산 방면으로 가다보면 회진면 진목리에 닿는다. 그곳에 이청준 선생의 숨결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생가가 있다. 아담한 마을의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소담한 집이 한 채 나타난다. 생가에 들어서면 유물과 사진이 다소곳하게 놓여 있는 방과 장독대가 있는 마당이 여행자를 맞는다.

이청준 문학탐방길 1코스 '눈길'은 진목마을 뒷산 정자나무에서 시작한다. 

생가를 나서면 '정남진 문학탐방길'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소설로 꼽히는 '눈길'이 태어난 곳이다. '눈길'은 이청준이 고향집이 빚쟁이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갔던 참담한 기억을 그린 작품이다.

문학탐방길 1코스가 바로 '눈길'이다. 생가마을에서 옛 고갯길을 지나 대덕읍 연지삼거리(4.6㎞)에 이르는 오솔길이다.

'눈길'은 1977년 발표되어 2009년 8차 교과 개정 이후 고등학교 검인정 국어교과서 등에 수록돼 있다.

이제 '눈길' 걸어보자. 생가 마을 뒷편 느티나무에서 길은 시작된다. 산과 들녘이 조망되는 이곳에 올라서면 진목마을과 드넓은 득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탐방로는 옛날 진목마을과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 대덕읍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마을 외곽을 따라 번듯한 신작로가 나면서 그 길은 잊혀졌다. 그러나 소설 '눈길'이 죽었던 길을 되살렸다. 이 길을 걷는다는 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일이다.

'눈길'은 소설이지만 작가가 "소설 안으로 내 자신이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가장 강렬하게 드는 작품"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산과 들녘이 조망되는 탐방로에 들면 진목마을과 드넓은 간척지와 득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광주에서 유학 중이던 이청준은 고향집이 남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향에 내려간 그는 어머니와 함께 남의 집이 된 옛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온다. 그 밤의 기억이 소설 '눈길'의 줄거리다.

어머니는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집주인에게 사정해 옛집에 아들을 재운다. 모자는 이튿날 새벽 시외버스 정거장이 있는 삼거리까지 걸어서 간다. 마침 눈이 내린 새벽이었다. 길에는 모자의 발자국만 찍힌다. 아들을 태운 버스가 떠나고 혼자 남은 어머니는 그 길을 다시 걸어서 돌아간다.

'눈길' 속의 정류장인 연지삼거리는 그때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않다. 소설 속 한 대목과 정자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문학탐방길 2코스의 이름은 '문학길'로 삼거리에서 3.5㎞ 떨어진 천관산 문학공원까지 이어진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배경이 된 용산면 남포마을의 소등섬

삼거리에서 회진포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선학동이다. '선학동 나그네'의 주무대인 회진면 선학동은 학이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의 관음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봄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선학동 중턱에서 보면 출렁이는 득량만이 드넓게 펼쳐진다. 포구에는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 양철지붕이 그 시간들을 추억하고 있다.

영화 '축제'의 배경이 된 용산면 남포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남포는 고즈넉한 해변마을로 마을 앞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소등섬이 자리하고 있다. 소등섬을 마주하고 원작과 영화를 함께 떠올려본다. 소박한 포구의 해안선과 고즈넉하게 펼쳐진 바다, 그리고 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섬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썰물 때가 되면 뭍과 연결되는 소등섬은 달이 뜰 때 묘한 아름다운 자태를 내뿜는다.

문학의 시작은 바다라고 말하는 소설가 한승원. 희수의 나이에도 창작혼을 불태우는 그는 오는 8~9월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한승원의 길을 따라가 볼 차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비롯해 생명력 넘치는 문학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그는 안양면 율산마을에 '해산토굴(海山土窟)'이란 집필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아담한 한옥인 해산토굴은 득량만의 수문(水門) 여다지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있다. 그 바다는 사방에 연꽃잎 같은 섬들이 빙 둘러서 있어 화엄의 바다, 연꽃바다라고 작품을 통해 이름 붙이기도 했다.

해산토굴 아래에는 문학학교 '달 긷는 집'이 여다지해변에서 떠오르는 달을 기다리고 있다.

해산토굴을 찾은 날은 굵은 장맛비가 토굴을 적시고 있었다. 한승원 선생은 빗속에도 문앞으로 나와 잔물결 같은 미소로 객을 맞이한다.

여다지해변에 조성된 한승원 문학 산책길에 들면 절로 시심이 돋는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한승원은 "바다는 내 문학의 소재이자 문학의 시작이다. 소설의 9할은 내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바다는 삶의 현장이자 화음의 바다이며 우주적인 자궁이다. 즉 생산성과 치유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장흥의 바다를 말한다. 도시의 고달픈 삶과 답답함이 바다에 오면 풀리고 힐링이 되고 치유되는 곳이 바로 바다라는 것이다.

한승원은 회진면 신상리의 고향마을과 앞바다를 배경으로 교사시절에 발표한 '목선'을 비롯해 '앞산도 첩첩하고' '불의 딸' 등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올해 희수(喜壽)를 맞은 그는 오는 8~9월 쯤 고향 땅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문학동네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바다가 아니다. 신화적이고 역사적인 아픔을 간직한 장흥 탐진강과 탐진댐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가슴 아픈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귀띔한다

해산토굴을 나와 종려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면 여다지해변에 닿는다. 한승원 시비 30여개가 세워진 '한승원 문학 산책로'가 반긴다. 그에게 '마르지 않는 문학의 샘'이자 '창작의 고향'인 장흥의 바다를 따라 그의 글들이 새겨져 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비릿하고 살아 있는 그의 언어들을 더듬어 가다보면 600m에 이르는 산책로가 짧다.

소설 '키조개'에서 여다지해변은 만물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갯벌이요 바다로 그려지고 있다. 썰물 때 여다지해변은 조개를 캐는 억척스런 아낙들의 삶의 터전이 된다.

삼산방조제가 있는 관산읍 신동리는 소설가 이승우의 흔적이 묻어 있다. 방조제 앞 바다에 위치한 작은 돌섬은 '샘섬'의 무대로 마을사람들은 '가슴앓이섬'으로 부른다.

마지막으로 찾아야 할 곳은 수많은 작품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한 천관산이다. 천관산은 해발 723m의 산이지만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능기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꼽힌다. 산세가 마치 옥으로 장식된 면류관 같다 해서 '천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상인 연대봉에서는 다도해가 한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까지 굽어볼 수 있다.

한승원 문학 산책로에는 그의 시를 적어놓은 시비가 길손을 반긴다.

천관산은 풍광도 좋지만 문학공원과 문학관을 잊지 말고 들러야한다. 천관산 중턱 탑산사 아래에 위치한 문학공원에는 이청준, 박범신, 양귀자 등 유명 작가들의 글들을 바위에 새겨놓은 비석이 층층이 세워져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꽃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문인들이 각자의 연금술로 만들어놓은 글들을 따라 읽다 보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행메모

▲가는길=수도권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문흥IC를 나와 29번 국도를 타면 장흥 땅이다. 서해안고속도로는 목포IC를 나와 목포~광양 간 고속도로 타고 가다 장흥IC를 나선다.

▲축제= 국내 최대 물축제인 '2015 정남진 장흥물축제'가 오는 31일부터 8월6일까지 탐진강과 편백숲 일원에서 열린다. 개막 퍼레이드 '살수대첩'을 시작으로 물총과 물풍선, 물대포, 소방차, 헬기까지 동원되는 지상 최대의 물축제가 짜릿하다. 참여 관광객과 이색 복장을 한 악당들의 물싸움은 축제의 백미. 맨손 물고기잡기, 천연 약초 힐링풀, 뗏목타기, 수상자전거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주제전시관이 준비된다. 문의 (061)860-0224, 0380.

▲먹거리= 장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다. '장흥삼합(사진)'이다. 장흥 특산물인 한우ㆍ키조개ㆍ표고버섯을 함께 싸먹는데 맛도 영양도 일품이다. 읍내의 맛나숯불갈비(061-864-1818)가 제대로 된 삼합을 내놓는다. 삼합을 먹고 나면 억불산 아래에 자리한 전통찻집인 평화다원(061-863-2974)을 찾아보자. 장흥의 산에서 수확한 야생차 잎으로 빚은 청태전의 향긋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수문해수욕장 앞 바다하우스(061-862-1021)는 바지락무침이 맛깔스럽다. 토요시장의 된장한우물회와 갯장어샤브샤브 등도 좋다.

▲볼거리= 문학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다른 볼거리도 많다. 편백숲 우드랜드를 비롯해 천년고찰 보림사와 비자나무숲, 유치자연휴양림, 고영완 가옥, 탐진강 정자기행, 제암산, 해양낚시공원 등이다. 특히 장흥 토요시장은 싸게 한우를 먹을 수 있는 한우거리와 할머니 장터, 신나는 공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장흥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편백숲우드랜드. 이곳에 들면 절로 힐링이되는 기분이다

억불산 아래 자리한 전통찻집인 평화다원에 청태전이 맛깔스럽게 매달려있다. 청태전은 장흥의 산에서 수확한 야생잎으로 만든 차로 향기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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