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요청 결정이 박수 칠 일은 아니잖아!

개·돼지 발언 충격 준 나향욱 현직 검사장 첫 구속 진경준 파면으로는 근본 해결 안돼....

옳은 가치관 가진 인물 뽑고 눈 부릅떠 제대로 평가해야

#1. 충격적이었던 동물 비유 발언을 차마 옮기지는 못하겠다. 날선 비판의 말과 글이 하도 넘쳐서 더 보탤 필요도 없어 보인다. 교육부가 인사혁신위원회에 가장 중한 징계인 파면을 요청하기로 했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 결정이 지당하다고 하면서, 인사혁신위원회에서도 당연히 파면 결정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장면 전환. 승승장구하던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온갖 글과 말이 넘친다. 교육부의 파면 요청 결정이 당연하다고 끄덕이던 사람들이 여기선 그러지 않는다. 그동안 그 검사장이 꽃보직을 돌며 승진가도를 달리도록 법무부와 청와대는 무엇을 했냐며, 인사검증시스템에 강도 높은 비난의 화살을 들이댄다.

#2. 지방대 학부에 지방대 로스쿨, 그것도 세가 가장 약한 로스쿨을 졸업하고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보통 사람이 대한민국 1%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집단은 내가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압도적 절대 다수가 서울대 법대이고 간혹 고려대 법대 출신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후배 판사들 방에 차 마시러 자주 드나들던 어느 전관 변호사는 나의 출신을 듣고는 말했다. “그런 학교를 나와서 어떻게 법원에 들어왔습니까?” 그것도 초면에, 여러 판사와 재판연구원이 있는 자리에서.

장면 전환. 서울의 조그만 대학에서 학부와 로스쿨 둘 다 마친 동료 재판연구원이 있었다. 그가 속한 재판부의 부장 판사는 그 연구원의 검토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연구원을 앉혀 놓고 같은 소리를 했다고 한다. “학부라도 좀 좋은데 나오지 그랬어.” 그 부장 판사도 속으로는 나를 향해 ‘그런 학교를 나와서 어떻게 법원에 들어왔습니까?’라고 생각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부 소속이 아닌 나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존경받을 만한 부장 판사였다.

다시 #1. 나향욱이 잘못한 것은 말이다. 물론 말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본질은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그런 가치관을 갖고 공무원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으로 만든 정책이 구체적으로 신분제를 공고화하는 역할을 하였는지는 드러난 바 없다. 그가 입안한 정책이 알고 보니 쓰레기더라는 뉴스도 보지 못했다.

장면 전환. 진경준이 잘못한 것은 먼저는 행동이고, 나중이 말이다. 검사 선서문대로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은’ 그가 ‘불러 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뒤로 호박씨를 그렇게 까는 줄 아무도 몰랐다. 당시로서는 늘 그럴듯한 말을 했다. 의심은 했지만 분노하지는 않았다. 뒤늦게야 우리는 그의 ‘말’이 거짓임을 알았고, 빠른 두뇌 회전과 수사 능력에 가려졌던 겉과 속이 다른 그의 ‘가치관’에 분노했다.

다시 #2. 초면에 나를 모욕한 그 전관은 늘 최고의 길만 가다 보니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도 다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요샛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대학 출신을 보니 순간적으로 ‘교양 없는’ 말도 나왔을 수 있다고, 지금의 나는 ‘너그러이’ 이해한다. 그러나 정말 비열했던 사람은 그저 그런 로스쿨 출신 재판연구원이 속한 부장 판사였다. 자기 연구원을 은밀히 일상적으로 모욕했지만, 남들 앞에서는 결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3. 말 한 번 잘못했다고 공무원에 대한 징계 중 가장 중한 징계를 내리는 것은 비례원칙에 반한다. 심정으로야 파면시키고도 분이 안 풀리기도 하겠지만 감정이 법을 이길 수 없다. ‘너무 솔직하게’ 마음에 있는 말을 해버린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발끈하고 성내 봤자 화풀이에서 끝나는 것과 똑같다. 학부 학벌로 연구원을 무시하던 부장 판사가 기득권의 편견을 갖고 재판하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교육부도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거, 익히 본 뻔한 수법이다. 파면 요청 잘했다고 박수 칠 일도 아니고, 교육부가 요구한 징계 수위를 낮추지 말라고 인사위원회를 압박할 일도 아니다. 제대로 된 가치관 가진 공무원을 선발하고, 제대로 된 기준으로 평가하라고 감시의 눈 부릅뜰 일이다. 나향욱보다 더한 진경준이 승승장구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리현일 편집장 yosul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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