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 새누리당 초선 의원 성폭행 의혹’ 사건이 마무리되어 가는 모양새다. 어떤 취재에도 응하지 않던 심학봉 의원은 이름이 공개되자 “새누리당을 떠나겠다”며 탈당 선언부터 했다. 새누리당은 심학봉 의원의 탈당신고서를 곧바로 처리해버렸다. 경찰은 심학봉 의원의 2시간 진술만으로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다. 대구 매일신문의 ‘심학봉 의원’ 실명보도가 나간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 보도는 석연치 않다. 심학봉 의원은 ‘현역’ 국회의원이다. 그래서 사건 초기 네티즌들은 “실명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매체들은 비공개로 일관했다. 특히, 경찰이 무혐의 처리하는 과정 또한 의문점이 많지만 이를 제기하는 매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보도행태를 어떻게 봐야하는 것일까.

심학봉 새누리당 전 의원의 성폭행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대구지방경찰청에 7월 24일 보험설계사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신고가 접수된다. 새누리당 의원이 같은 달 13일 자신을 대구의 한 호텔로 불러 강제로 옷을 벗기고 성폭행을 했다는 신고였다. 이 여성은 ‘해당 의원이 성폭행을 한 뒤 30만원을 가방에 넣어줬다’는 구체적인 진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또한 수사 결과, CCTV와 통화내역을 통해 해당 의원이 당시 호텔에 있었고 해당 여성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건 지난 1일이다. 관련 보도가 나오던 시점도 이때와 맞물린다

언론매체들, 1일 왜 ‘경북지역 새누리당 의원’이라고 했나

지난 1일 심학봉 의원의 성폭행 사건을 다룬 매체들은 그를 ‘경북지역 새누리당 의원’ 혹은 ‘새누리당 초선 의원’으로 소개했다. 어떤 매체는 ‘새누리당 S국회의원’이라고 했고 또 어떤 매체는 ‘새누리당 ㄱ의원’이라고 표기했다. 이미 사건이 접수되고, 피해자 진술과 구체적 통화내역 그리고 CCTV 등이 확보되어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심학봉 의원의 이름은 노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정연우 교수는 “심학봉 의원은 현역 국회의원으로 공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믿을만한 정황이 있다면 실명보도했어야 하지 않아 생각된다”고 밝혔다. 경찰이 CCTV와 통화내역을 확보했다고 밝힌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대상이 심학봉 의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실명보도를 하는 것이 옳았다는 설명이다. 언론의 ABC에서 그때가 바로 ‘실명보도’의 시점이었어야 한단 지적이다.

정연우 교수는 “어차피 기자들에게는 조사권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며 “그렇기 때문에 정황을 봐서 믿을만하다고 판단되면 그 시점에서 언론매체들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실명을 알려주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일부 언론의 경우 처음 ‘S의원’, ‘ㄱ의원’이라고 보도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문제”라면서 “새누리당 소속 경북지역 초선 S의원이라고 한다면 사실상 심학봉 의원을 특정 하는 상황인데, 굳이 이니셜을 쓸 필요가 있었는가 싶다. ‘ㄱ의원’ 표기의 경우, 반대로 김 씨 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조선일보 5일자 기사

모든 언론보도에서 ‘피해자’ 인권을 앞서 고민하는 언론인권센터 윤여진 사무처장은 질문을 하자마자 “심학봉 의원이라는 실명이 안 나와 이상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불법적인 사건이었고 성폭행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알려진 것”이라고 강조한 뒤, “공인이더라도 소문만 가지고 실명을 밝히는 것은 안 된다. 하지만 해당 의혹이 진실이라고 상당히 믿을만하다고 판단된다면 실명보도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CCTV 등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힌 시점이라면 실명보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국장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행위를 했다면 공인이기 때문에 실명을 공개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이번 사건에 있어서 새누리당 의원이기 때문에 감싸주기 보도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사무국장 또한 “유죄확정이 아니라면 인권침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기본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정치인은 공인이라는 점에서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맞다”고 입장을 밝혔다.

“명확한 증거가 나온 현직 의원 사건, 실명보도 했어야”

심학봉 의원의 성폭행 사건은 캐면 캘수록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5일, 심학봉 의원이 성폭행 여성을 찾아가 무릎을 꿇은 채 “죽을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3000만원의 합의금도 제안했었다는 것이다. 성폭행 피해자 지인에 대한 취재 결과였다. 심학봉 의원은 “(피해자에게)진술을 바꾸라고 회유하거나 협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언론매체들이 관심만 가진다면 이번 사건은 다양한 방면에서 짚어볼 대목이 많았다.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당일은 심학봉 의원이 새누리당 경북도당 윤리위원장으로 임명된 날이었다. 심학봉 의원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기도 했는데, 그 날은 전체회의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언론매체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안이다. 그 대상이 ‘현역 국회의원’이고 그 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34기 추도식에서는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건을 넓혀 보면, 새누리당이 거듭되는 성추문 논란을 짚을 수도 있다. 최연희-강용석-윤창중-박희태 전 국회의장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그릴 수도 있다. 하나의 공당에서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여전히 꼬리자르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이 같은 상황들을 꼬집어 볼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매체들은 보도를 포기했다.

▲ 성폭행 의혹을 받았던 경북지역 새누리당 초선은 심학봉 의원으로 밝혀졌다(사진=연합뉴스)

KBS와 MBC, SBS 지상파 3사는 심학봉 의원이라는 실명이 공개되기 전까지 메인뉴스를 통해 보도하지 않았다. 3일 실명이 공개된 날은 심학봉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날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심학봉 의원이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새누리당 의원은 아니다’라는 점에 맞춰졌다. 그 다음날 4일 보도에서는 경찰의 ‘무혐의’ 결론이 주목됐다. 그리고 5일 심학봉 의원이 회유라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지만 지상파 3사에서는 이미 끝난 사건이 돼 버린 듯하다.

한 언론인은 “명확한 증거가 나온 현직 의원 사건”이라면서 “언론매체들이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움이 무뎌진 상황에서 여당 의원이라는 것이 작용해 실명보도를 최대한 늦춘 것이 아닌가 싶다”고 소견을 밝혔다. 그는 “새누리당이 공당으로서 책임 있는 조치를 묻는 보도가 없다”면서 보도의 ‘이중잣대’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의 경우, 곧바로 실명보도가 나왔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 알려진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 남교사의 성추행 사건 보도 양상과 비교해도 확실히 심학봉 의원에 대한 보도는 과소하다. 심학봉 의원의 성추행 의혹은 결국, 언론이 어떤 수준인지를 실감나게 드러내는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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