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셈블리>에 대해 혹자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판타지라며 냉소한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시청자들이 골몰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재벌을 만나서 사랑을 이루고 재벌을 징벌하는 드라마는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 <어셈블리>는 '일장춘몽'과도 같은 판타지였다. 그런데 아침과 주말, 그것도 모자라 이제 주중 미니시리즈까지 장악한 재벌을 조롱하고 징계하는 드라마들 역시 '판타지'이긴 매일반이다.

그러나 똑같은 판타지이지만, 다르다. 드라마판을 범람하는 막장 재벌드라마들이 현실 삶의 고통을 배설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면, 4.9%의 시청자들만이 공유한 <어셈블리>의 판타지는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환기시켜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자각시켜주는 무뎌진 일상의 ‘송곳’과도 같은 판타지였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난 이후 오히려 마음이 더 묵직해지는, 그렇게 '진짜 정치'를 남기고 9월 17일 <어셈블리>는 20부의 꿈같은 시간을 마무리했다.

정치 불감증의 현실을 복기하다

초반 시선잡기에 무리수였다는 평가를 받은 <어셈블리>의 첫 장면은 '법'으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일군의 노동자들로 시작된다. 그 노동자들은 드라마 속 배달수가 올라갔던 크레인처럼,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전광판이든 그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고공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이렇게 자신들의 목소리조차 전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고 <어셈블리>는 그 서두를 뗀다.

더 이상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곳이 없어 막막했던 해고노동자 진상필(정재영 분)의 선택이었든,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의 차기 선거를 향한 은밀한 포석이었든, 요행히도 진상필은 동료들의 오해까지 사며 여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그렇게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가란 질문으로 시작한 <어셈블리>는 본격적으로 '어셈블리'에서 국회의원이 할 일들을 점검해 나간다. 즉, 현실 정치에서 권력의 이합집산으로만 비춰지는 국회, 극중 진상필이 정의 내리듯 편 가르기와 나눠먹기의 '정치공학'을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로 오해하게 하여 외면하게 만들고, 그 한편에서 끼리끼리 맘껏 해먹는 '정치판'을 여당의 진상, 나아가 '국민 진상' 진상필을 통해 복기해 나간다.

진상필의 진상짓을 통해 시청자들은 '진짜 정치'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국회의원 자리는 밀실 공천을 통해 나눠 먹기식으로 준 하사품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를 뽑는 자리라는 것을. 한 지역구의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이익 사업을 따내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나라 전체와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국회가 힘 있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법을 만들고 거수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여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라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곳이 아니라 신념을 위해 모인 동지들이 있고, 그 동지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치를 외면한 대가로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당하는 결과를 낳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아무리 정치를 혐오하고 부정해도 정치가 우리의 인생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셈블리> 공홈 게시판을 끝없이 메운 '명대사'들이 실현될 수도 있는, 그곳이 국회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어셈블리>는 현실에서 시작되어, 현실의 정치를 차근차근 복기해 나가면서, 그리고 현실에서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진짜 정치들을 이야기해가면서 '판타지'가 되어간다.

한낱 해고노동자였던 진상필은 결국 '살신성인'으로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사회가 쓰레기라 버린 사회적 패자들을 위한 '배달수법', 두 번째 인생을 위한 법을 성취해냈다. 19회 장황한 입법 과정을 겪어내며, 대통령의 거부권까지 '거부'하면서, 결국 애초에 자신이 국회에 들어온 목적을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만약 현실이었다면, 요행히도 국회로 간 해고노동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을 던지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 수 있었을까? 법을 만드는 대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이어갈 '재선'을 노리고, 원칙을 지키는 대신 훗날을 도모한다는 미명하에 세를 규합하려 들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원칙들이 현실에선 일그러지고 어긋나버리는 것을, 굳이 드라마가 재현하지 않아도 매일 매일의 정치에서 확인하기에 <어셈블리> 속 '진상 정치' '진짜 정치'는 판타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진상필과 그의 동지들이 구현한 '진짜 정치'를 통해 그간 우리가 정치라 믿었던 것이 '정치 기술자'들의 '정치공학'이었음을, 국회의 주인은 세금을 내고 나라를 지킨 국민들이며, 그들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은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일깨워준다. 국회에서 10년간 잔뼈가 굵은 정현민 작가의 내공으로, 현실 가능한 그리고 가능해야 할 '판타지'를 낳는다.

현실로 온 정치, 정도전이 아니라 진상필!

▲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

정현민 작가는 정치판의 생로병사를 2014년 사극 <정도전>을 통해 실감나게 풀어낸 바 있다. <정도전> 속 정치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듯, 정치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정치기술자가 된 사람들의,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의 싸움판이었다. 그렇게 그 누구보다도 정치판을 '리얼'하게 묘사했던 작가가 현실 정치에서 구현해낸 것은 정도전이 아니라 진상필이었다. 이상주의적 정치를 풀어내려 했다가, 결국 기술자가 되어버린 슬픈 운명의 사내 그리고 그 사내를 둘러싼 숱한 정치공학의 술수 대신, 우직하게 끝까지 원칙을 놓지 않은 진상필의 ‘진상 정치’를 내세웠다.

<어셈블리>가 현대판 정도전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면, 아마도 <어셈블리>는 정치 게임에 열광하는 숱한 시청자들을 양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세간의 시선을 잡는 정치 게임 대신, 아니 이미 현실의 정치판을 통해 신물 나게 경험하고 있는 정치판의 복사 대신, 그런 정치판에서도 누군가 노력하면 가능할 '진짜 정치'를 논한다. 덕분에 누군가는 그것이 생경하다 외면하고, 누군가는 현실성이 없다 거부하고, 또 누군가는 좌빨이라며 손가락질했다.

때문에 <어셈블리>는 6%을 넘지 못한 초라한 성적표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은 판타지에마저도 '정치'에 희망을 걸지 않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직은 고사되지 않은 5~6%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포기되지 않는 '진짜 정치'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닮은 정치인을 두고 설왕설래하듯, 리얼한 정치판을 배경으로 가장 리얼하지 않은 ‘진짜 정치’를 이야기한 덕분에, 시청자들은 <어셈블리>을 보며 현실에서도 가능한 '진짜 정치'를 꿈꾸게 된다.

그렇게 ‘진짜 정치’를 꿈꾸도록 하는 데, 리얼한 정치판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열연한 <어셈블리>의 배우진이 있다. 무엇보다, 판타지인 줄 알면서도 살그머니 진상필의 진상 정치, 진짜 정치를 응원하고, 그래서 놓을 뻔한 현실 정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다시 잡게 만든, 진상필로 '빙의'한 정재영의 열연,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만든 제작진이 있었다. ‘정재영의 진상필’ 외에 그 누구를 쉬이 떠올릴 수 없도록 만든 정재영의 진정성이 <어셈블리>의 진심을 채웠다. 제작진과 배우들의 진심이 더해진 드라마 <어셈블리>는 2015년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를 잠시나마 돌려주었다

리강영뉴스닷컴  webmaster@shinatv.com

<저작권자 © 리강영뉴스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