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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오월 유족들 오열
리강영뉴스닷컴 | 승인 2020.05.17 16:52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장재철 열사의 어머니 김점례씨를 위로하고 있다.2020.5.17/뉴스1 © News1


(광주=리강영뉴스닷컴)  = "내 한을 좀 풀어줘. 내 자식이 왜 그렇게 가야했는지, 난 아직도 그 이유를 몰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오월 어머니들은 자식과 남편의 묘를 찾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장재철씨(당시 24세)의 어머니 김점례씨(83)는 아들의 묘 앞에 앉아 연신 묘비를 닦고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재철아, 재철아, 엄니가 너무 한스럽다. 네가 왜 그렇게 가야 했냐. 엄니는 아직도 그걸 모른다. 늙은 어미는 한만 쌓였다."

재철씨는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자를 구하려다 5월23일 화순으로 넘어가는 지원동 외곽도로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재철씨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김씨는 그를 위로하러 온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품에서 또 한번 오열했다.

양향자 당선인은 "어머니 이제 더이상 울지 않기로 했잖아요. 왜 자꾸 우시냐"며 점례씨의 눈물을 닦아주다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점례씨는 양 당선인에게 "내 자식이 왜 그렇게 가야 했는지 좀 알려줘. 내 한을 풀어줘"라고 말했다. 양 당선인은 김씨의 손을 잡으며 "5·18 진실을 꼭 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철씨의 묘에서 몇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김경철씨(당시 29세)의 묘에도 어머니 임근단씨(89)가 찾아와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김경철 열사 어머니가 아들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2020.5.17/뉴스1 © News1


경철씨는 계엄군의 무차별 구타에 숨진 5·18 첫 희생자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경철씨는 도망가라는 외침을 미처 듣지 못하고 계엄군의 무차별 곤봉세례에 쓰러졌다.

임씨는 "경철아, 무정한 놈아, 돌도 안 지난 핏덩이 하나 남겨두고 내 가슴에 이렇게 멍이 들게 하냐"며 오열했다.

아들의 묘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임씨는 이렇게 목놓아 우는 것도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우리를 폭도라 그래서 맘 놓고 울지도 못했다. 이렇게 아들 묘 앞에서 실컷 맘 놓고 울어보는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울고 싶을 때 못 울어서 그런지 한이 많이 됐다. 4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진짜 한을 좀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슬픔만큼 남편을 잃은 슬픔도 컸다.

18일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남편을 억울하게 잃은 사연을 전할 임은택씨(당시 35세)의 아내 최정희씨(73)도 남편의 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임은택의 묘 앞에 아내 최정희씨가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씨는 5·18기념식에서 억울하게 남편을 잃어야 했던 사연을 편지로 전달할 예정이다. © News1


부산 출신인 최씨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남편 은택씨를 만나 결혼했다. 부산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다 1978년 전남 담양으로 이사해 소를 키워 팔았다.

삶의 터전을 옮긴 지 2년 만에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소 판매대금을 받기 위해 광주로 향한 임씨는 그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은택씨는 80년 5월21일 담양으로 오는 길목인 광주교도소 뒤편에서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최씨는 "'애아빠가 어딘가에 살아있겠지'하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생사를 수소문하고 다녔다. 동서와 시누이들까지 합세해 광주시내 병원 등지를 찾아 다녔다. 돌아다니면서 실신을 하면 동서들이 나를 부축해주면서. 그렇게 남편을 찾아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남편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최씨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근택씨는 5월31일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됐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5·18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0.5.17/뉴스1 © News1


최씨는 "우리 애들이 한창 사랑받을 나이에 아버지 사랑도 못 받고 큰 것이 참 가슴이 아프다. 내 고통도 크지만 아빠 잃은 내 자식들 고통도 컸다. 학교에서 아버지가 폭도라며 손가락질 받고 그렇게 자랐다"고 말했다.

그는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와서 속시원하게 말도 못 하고 40년 모진 세월을 견뎠다. 아무도 내 심정을 모른다. 이번 기념식에서 편지로나마 내 억울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속내를 전했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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