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대선 정국에서 나는 분별없는 야권연대론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가 있다. 당시 대선 구도는 2강 1약, 즉 박근혜와 문재인이 2강, 이정희가 1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대선에서는 정권교체의 열망이 어느 선거 못지않게 높았다. 다수 국민이 전임자 이명박의 실정에 학을 띠고 있었고, 일본군 군인이자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식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구집단이 일찍부터 부정선거를 획책한 것도 이런 형세의 불리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유능하지 않은 데다 권력의지까지 약했던 문재인 후보는 이런 유리한 국민적 열망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선거유세는 물론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인상 깊은 국면을 만든 적이 없었다. 이에 따라 정치에 냉소적인 젊은이들과 무당층 유권자들은 선거에 그리 열띤 호응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통합진보당 후보 이정희는 두 번에 걸친 텔레비전 토론에서 이런 심상한 분위기를 일거에 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녀의 텔레비전 토론은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유권자들과 기득권 정치에 식상해 있던 유권자들을 일약 각성시켰다. 나는 이정희의 부상으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대폭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선거는 생물이라는 말과 같다. 선거는 생물이기에 결코 산수 식 셈법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정희는 3차 토론 직전에 문재인에게 자기 지지자를 넘겨버리는 선택을 했다. 나는 공개적으로 예상수치까지 제시하며 문재인의 패배를 예측했다.

역시 이정희 지지자는 이정희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선거에 대한 열기가 식었고 이것은 투표율의 저하로 나타났으며, 이 보이지 않는 변화는 미세한 표차로 사상 가장 저개발된 약체 후보 박근혜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때는 물론 지금도 소수진보정당 후보의 사퇴나 무조건적인 야권연대를 정당화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은 좀처럼 자기들의 정치적 미숙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정치란 동기만 순수하다고 해서 결코 득의하는 게 아니다. 아니, 순수하기만 해서는 득의하는 데 오히려 불리한 것이 정치다.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민노당의 권영길은 두 번 다 완주하여 각각 3% 이상의 득표를 했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이 당선되었다. 1988년 총선은 야권분열이 가장 첨예한 상태로 치러졌다. 그러나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70석에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59석 그리고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35석을 더해 사상 최고의 여소야대를 구축했다.

최근의 사례를 보더라도 작년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의 야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에 24%나 뒤지고 있었던 데다 통합진보당 후보까지 나왔지만 최문순 지사가 재선되었다. 반면 경기도는 진보당 후보가 사퇴하면서 여야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김진표 새정련 후보는 낙선했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다. 물론 나는 야권 분열이 야권 통합보다 언제나 유리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좋지 않은 통합은 어지간한 분열보다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얄미운 놈’으로 통합되거나 ‘무능한 후보’로 통합되면 분열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2011년 4.27 재보선에서 야권은 분당의 손학규, 강원도의 최문순, 전남 순천의 김선동 등이 모두 승리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김해 을에서 이봉수만 패배했다. 이때 통합을 주도했던 게 다름 아닌 유시민이었다. 당시 표차는 51:49, 이것은 공교롭게도 지난 대선의 박근혜 대 문재인의 표차 51:48과 거의 같은 수치였다.

최근 제1야당이 친노 대 비노로 분열하고 있다. 이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단견이다. 어떻게 분열하고 어떻게 선거에 임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또한 최근 진보정당이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무조건 야권연대’라는 미몽에 절어 있는 사람들은 진보정당 부활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

리강영 대표기자  webmaster@shina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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