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면서 하던 놀이가 생각납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물으면 ‘밥 먹는다!’하고 여우가 된 한 아이가 답합니다. ‘뭐 먹니?’ 하면, ‘개구리 먹는다!’ 하고 대답합니다.

여우가 무슨 개구리를 먹겠어요? 또 묻습니다. ‘살았니, 죽었니?’ 하고 묻는데, 그때 원 안에 갇힌 여우가 뛰쳐나와 한 아이를 잡으려고 달리며 말합니다.

‘살았다!’

그래서 또 잡힌 아이가 여우가 되어 이 시시껄렁한 놀이를 하는데, 죽었다, 하고 대답하면 원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죽었다!’ 해 놓구선 원 안에서 죽치는 친구는 우리를 보고 깔깔거리고 우리는 그 친구를 보며 약올리며 웃으며 하던 놀이가 생각납니다.

동그라미, 그 원에 갇힌 채로 그냥 영영 여우가 되어버린 채 우리와 담을 쌓던 고집센 친구가 생각나네요.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노는 방법을 알았고, 그날 그 친구는 자기만의 이기적인 세계를 고집한 댓가로 몇 번이나 여우를 계속했습니다.

‘뭐 죽어야 살고, 살아야 죽는!‘ 그런 패러다임을 우리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꽁냥꽁냥 각설하고, 동그라미, 참 말이 이쁩니다. 원을 잘 그리면 삶이 평탄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삼각형, 사각형 등 그 외 다른 여러 가지 도형들은 이타적으로 혹은 이기적이라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모습들일 것입니다. 원, 만다라, 알 이 모두는 동그라미를 일컫는 도형의 또 다른 말들, 살아가는 방식이야 다를지라도 나름대로 다들 잘 사는데요!

죽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동그라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몸 안 동그라미, 나무는 자신의 몸속에 나이테라는 동그라미를 한 해 한 번씩 그립니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를 어떻게 그려왔는지 잘려야 세상에 내보이게 됩니다.

내 안의 동그라미를 그리려다그리려다 채 다 못 그린 채, 한 해 또 벌써 12월입니다. 나는 올해 과연 동그라미를 그려왔나 싶기도 합니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힘든 날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견뎌왔던 ’결‘들이 훈장처럼 새겨졌을 거에요. 짝짝짝! 박수칠게요.

혹시 뽀족뽀족한 미움의 날을 세우지나 않았나, 안주하여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 저는 여러 가지 마음이 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동그라미를 그려야 삶은 지속되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르는 삶, 동그라미, 삐뚤빼뚤, 이어진 선들이 얕아졌다

짙어졌다 할지언정, 바로 그 선의 열린 틈새가 숨과 호흡이고, 마음의 내장이기 때문입니다.

네, 나무는 나이테가 바로 자신의 내장이지요. 동그란 내장, 아무리 동그라미를 그리려해도 불완전한 인간은 완전한 동그라미를 그릴 수는 없겠죠. 그러나 우리는 나무가 자신의 한 해 삶을 나이테로 기록하듯,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의 사람은 시련이나 고통으로 인해 잘려서야 마음결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달처럼 이즈러질지라도 나무는 포기하지 않았기에 또 나이테의 동그란 선을 내어 숨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 테지요. 해를 바라보면서 푸른 나뭇잎을 거느릴 수 있었고, 수많은 여름 그늘이 되어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었을 테지요.

진부한 말이지만요. 조금씩 동그라미를 그려가는 삶, 언젠가는 그늘을 드리우는 삶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살아서 몸속에서부터 그려나가는 동그라미야말로 선하다고 믿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푸름도, 철마다 아름다운 활엽도 선한 모습이라고, 지긋이 하나의 뜻을 세워 뿌리를 내린 동그라미는 죽어서 후손이 쌓아올린 무덤이 그리는 동그라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겠죠.

마음결에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살아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숨이 다 식기 전에 말입니다. 아직 체온이 다 식기 전에 말입니다. 상처도, 아픔도 모두 마음결에 기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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