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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강영컬럼>막걸리 한 잔의 追憶
리강영 선임기자 | 승인 2021.01.10 14:16

올해 국내 주류 업계를 들썩이게 만든 것은 막걸리다. 지난해 1월 가수 영탁이 트로트 경연에서 부른 '막걸리 한 잔'의 위력이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막걸리 한 잔을 외치면서 마시는 열풍에 다시 불이 붙었다. 2009년 탁월한 항암효과가 알려지면서 막걸리 열풍이 시작된 지 11년 만이다.

영탁이 광고 모델로 출연한 막걸리는 첫 방송 하루 만에 판매량이 10배 늘었다고 한다. 막걸리는 ‘막 걸러 낸 술’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맑고 투명한 청주에 비해 탁하다고 해서 탁주라고도 불린다. 애호가들이 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맛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 명재상 정인지는 어머니의 젖과 막걸리는 시각적으로 비슷하다고 해서 막걸리를 노인의 젖줄이라고 표현했다.

정인지와 문호 서거정, 명신 손순효는 말년에 밥 대신 막걸리를 즐겼으나 장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10년간 비서실장을 지낸 어느 분의 회고록에는 "박 대통령이 청와대 회식에서 주로 마신 술은 경기도 원당에서 공급한 막걸리로 그분에게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주는 귀한 음식 이었다"고 했다.

알코올 도수가 6~18%로 찹쌀·멥쌀·보리·밀가루를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막걸리는 온갖 풍파를 겪었다. 대부분 집에서 술을 빚었던 1909년 이전에 막걸리는 손님 접대와 제례에 많이 사용했다.

주세법을 적용한 1909년부터는 가정에서 담근 막걸리조차 밀주로 취급받았다.

식량이 부족했던 1965년에는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막걸리 제조가 금지되는 서러움을 겪었다.

당시 막걸리는 쌀이 아닌 보리, 옥수수, 밀가루로 빚어 품질이 떨어지기도 했다. 1971년부터 쌀 막걸리 제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으나 1999년에는 비 살균 막걸리의 공급지역이 제한됐다.

2000년에는 공급지역 제한이 풀려 전국적으로 공급이 가능해졌다. 코로나19와 정치·경제에 대한 실망이 커지는 연말연시에 막걸리 한 잔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리강영 선임기자  yosul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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