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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수의 康和麗秀>여수항 개항 100년, 유감 (遺憾)
리강영뉴스닷컴 | 승인 2022.01.07 13:12

여수항은 일제시대인 1923년 4월 1일 전국 18개항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의해 ‘세관지정항’으로 지정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현재 여수시는 100인 시민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여수항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를 추진중이다. 어딘가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일제에 의해 추진되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개항이 100주년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후 한반도에서 여수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었고, 소위 여수동정과 신항 일대가 크게 변모한 것도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역할이나 의미일 것이다.

여수항 개항 100주년을 준비하는 측에서는 이 시점부터 사실상 무역항의 기능과 역할을 해왔고, 국제항이자 무역항으로서 큰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항구가 설치될 즈음에 같이 설치된 곳이 미곡검사소, 여수수산제품검사소였다. 이러한 기관들은 수산제품과 미곡을 수출 또는 이출 직전에 검사하던 기관으로 식용 건제품, 식용 통조림, 수산비료 및 해조류 등이 검사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출된 수산물, 농산물들은 일본 내에서 식용으로 소비되거나, 공업원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설치 당시 검사한 수산제품 가격이 84,000원이었으나, 일제의 수탈이 본격화되는 시기인 1933년에는 약 40만원까지 증대하게 된다.

또, 1930년대 말부터 해방직전까지는 일제의 수탈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이는 당시 여수항역 승하차 인원수와 도착한 화물량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연하게도 여수역에 도착한 인원수가 여수역을 통해 내륙으로 이동한 숫자보다 훨씬 많다.

이들은 여수항을 통해 시모노세키와 하카다행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을 것이고, 징병자와 강제노역으로 동원된 인원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또 도착한 물동량이, 내륙으로 간 물동량보다 많은 것은 전라선 인근지역에서 수탈된 물자가 일본으로 공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징병제도를 통해 약 2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군으로 참전해 다수가 돌아오지 못했다.

수많은 농산물과 수산물들이 공출제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전쟁물자로 활용되었다.

이들이 모이는 장소가 여수항역이었고, 여수항을 통해 시모노세키와 하카다행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연락선에 탔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조국의 산천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여수시는 지금 여수항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잊혀진 옛일에 발목을 잡혀 미래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덮어놓고 의미를 재단해서는 안된다. 만약 나중에 누군가가 한국의 개항이 일본인의 덕분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여수항 개항 100주년! 마냥 축하만 할 일은 아니다.

<강화수: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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