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도 갯벌.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바지락, 꼬막, 굴 등을 채취하는 곳이다.

 

뜨끔했다. 일행들이 산길을 걸으면서 고사리를 꺾는 중이었다. 그나마 주민들이 고사리를 꺾는 숲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보이는 것을 뜯은 것이 다행이었다. 워낙 고사리가 많은 섬이라, 그것만으로도 고사리를 꺾고 싶어하는 갈증을 해결하기에 충분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주민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곳곳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는 커다란 자루와 망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예 배를 가지고 들어와 정박해 두고 고사리를 꺾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여객선은 고사하고, 도선도 없는 섬에 외지인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계절이 봄이다.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행정의 지원을 받아 낚시펜션도 만들었지만,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어업보다는 고사리를 비롯한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지인들이 들어와 고사리를 싹쓸이해 가면 속상했던 것이다. 

지난 봄, 진지도 풍경이다.

 

▲진지도 숲길. 여객선은 고사하고 도선도 없는 섬에 봄이면 외지인이 많이 찾는다. 숲에 있는 고사리를 꺽기 위해서다.

 

발전촉진형 투자선도지구 지정 탈락

진지도는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에 속하는 섬이다. 과역은 남양리에 있었던 양강역을 지나서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득량만에는 우도가 있고, 여자만에는 진지도가 있다. 우도는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지만, 진지도는 배를 타야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주민 대부분은 고령으로, 어업보다는 텃밭을 일구거나 산나물을 채취해 생활한다. 통발을 놓을 때 오가는 작은 선외기가 뭍으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백일리는 원래 진지도 외에 내백일도, 외백일도, 소백일도, 원주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내백, 외백, 소백은 제방으로 연결되었고 옥금도를 거쳐 슬항리와 이어진 섬 아닌 섬이다. 진지도만 사람이 사는 섬으로 떨어져 있다. 

진지도에는 고려말부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된 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웃한 여도리에는 조선시대 수군진이 설치됐다. 백일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박길도’라 했다. 백일도는 예부터 농어, 장어, 낙지가 많았고, 마을공동으로 바지락, 꼬막, 굴 등을 채취하는 갯벌어업이 발달했다. 

진지도에는 섬 안에 4개의 작은 해수욕장이 있다. 개인 소유지만 폐교도 잘 유지되고 있다. 섬 주변에 낚시공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섬은 군유지가 대부분이라 토지확보는 물론 기반시설을 계획하는 데도 유리해 전남도와 고흥군이 적극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그것이 몇 년 전 섬 관광자원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전남도가 추진한 ‘명상의 섬’이었다. 여수의 경도 개발사업을 보고 진지도를 ‘제2의 경도’로 개발하겠다는 의도였다. 여수 경도와 달리 거주하는 주민들도 많지 않아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발전촉진형 투자선도지구에서 탈락하며 어긋나기 시작했다. 투자선도지구에 지정되면 도로, 기반시설 등 인프라 구축에 국비가 지원된다. 건폐율과 용적율이 완화되고, 인허가 등 각종 특례와 세제감면, 재정지원의 인센티브가 이루어진다. 행정은 민간기업과 투자협약을 맺으며 노력을 했지만, 두 차례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한 후 개발계획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뭍으로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선외기

 

해양보호구역 지정…람사르습지 준비

진지도의 미래를 생각할 때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 여자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 이후의 역할이다. 이미 순천만갯벌과 보성벌교갯벌은 지난 2021년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그리고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한국의 갯벌’ 2단계 유산구역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 대상 중 하나가 진지도를 둘러싼 갯벌이다. 여자만 전체를 세계자연유산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다. 

고흥군과 여수시는 2단계 참여를 결정하고 진행 중이다.

첫 단계로 진지도 일대 갯벌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다음 단계인 세계유산후보로 등재하고 람사르습지도 준비해야 한다. 주민의 참여와 행정의 노력이 이어진다면 2026년 무렵 세계자연유산 구역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지도를 중심으로 한 백일리는 세계유산 생태교육과 생태관광의 거점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진지도 개발계획의 무산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순천시가 순천만갯벌 보전에 노력해 국가정원에 이른 것처럼 고흥갯벌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전략을 면밀하게 세워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곳에 기회는 오지 않는다. 

김준/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원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