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전달과 해석을 비판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에는 '전달'과 '해석'은 있지만 비판이 실종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인은 '남의 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차도살인'을 일삼는 비겁한 존재로나 묘사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비판은 실종된다. 제대로 된 비판을 위해 가끔은 언론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공격적으로 드러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도 진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우리의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또다시 ‘갑질’ 논란이다. 이번에는 정치인이 그 주인공이다. 정치인들 자녀의 취업 청탁 문제가 도마에 올라 화제인 것이다. 먼저 논란이 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이다. 윤후덕 의원은 2013년 9월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파주에 있는 LG디스플레이의 변호사 채용 과정에서 자신의 딸을 채용하라는 취지의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후덕 의원은 처음에는 “특혜채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해명했지만 곧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윤후덕 의원을 둘러싼 의혹을 윤리심판원에서 다룬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변호사 724명이 연명해 윤후덕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고 윤후덕 의원이 ‘을지로위원회’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난 여론은 높이지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유사한 의혹이 문제가 됐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의 아들이 법학전문대학원을 수료한 후 법원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정부법무공단에 채용된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법무공단은 2013년 9월 채용공고 당시 지원자격을 ‘법조 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로 한정했지만 두 달 만에 ‘2010년 1월 1일부터 2012년 3월 1일 사이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여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법조경력자’로 자격을 완화했다. 당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은 김태원 의원의 이웃 지역구에서 당선된 경력이 있는 손범규 전 의원이었는데 이러한 관계가 채용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법무공단은 김태원 의원의 아들을 채용 4개월 뒤에야 근무하도록 했는데, 이 역시 재판연구원 근무기간 만료일을 채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의혹 역시 제기되고 있다.

김태원 의원은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당 지도부에 사실규명을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에 나옴에 따라 법조계 인사 572명이 집단정보공개를 청구하는 등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사회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정치인이 이런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에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의혹이 사실인지, 이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자녀들의 채용에 얼마나 작용하였는지 여부는 추가로 판단해봐야겠지만 이러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며 훨씬 더 끔찍하고 많은 일들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국민들의 판단일 것이다. 만일 수사기관이 정치권의 인사 청탁 등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에 나선다면 훨씬 더 많은 사례를 적발해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결국 이런 사례는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대중적 인식이 결국 야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이라는 기득권을 누리는 데에는 여야의 구분이 없겠지만 모든 일에는 경중이 있는 만큼 모든 개별사례들을 모아 비교하면 여당과 야당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을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이것은 새누리당은 나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착하다는 식의 어떤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 인사들이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청탁을 하는 입장도 받는 입장도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여당은 ‘의례 그럴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불거져도 ‘궤멸적’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야당은 이후 대응에 따라서 심각한 타격을 입는 상황에까지 내몰릴 수 있다. 당장 윤후덕 의원이 ‘을지로위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최근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벌개혁’을 요구했다는 점이 야당에 대한 대중적 비난 여론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는 약자를 위하며 개혁을 요구하면서 뒤로는 자기 자식들 취업 문제를 챙겼다’는 식의 냉소적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겉으로는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뒤로는 자기 이득을 챙긴다는 논리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시대에 가장 파멸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정치세력이 내세우는 모든 명분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명분을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 명분 자체는 유효할 수 있지만 정치라는 건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론은 정치를 좌우하는 가장 큰 조류이며 이를 거슬러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통치의 논리와 저항의 논리가 있다. 통치의 논리는 어떤 종류의 ‘합의’로 이어지고 저항의 논리는 ‘갈등’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통치의 논리는 오로지 합리적인 차원에서 목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철할 것이냐에 집중된다. 다소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대다수 민중들의 삶에 꼭 필요하며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일부 정치인에 불과하므로 체제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가 필요하다고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통치의 논리에 가깝다. 정치인 역시 체제에 포섭된 생활인이며 그런 입장에서 자식들의 미래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상 제도를 통한 대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이 사건에서 보듯 정치인들은 근본적으로 민중을 대변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투쟁하면서 비판적 여론을 만들어 내야 이러한 폐단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저항의 논리에 가깝다. 법조인들이(물론 여기에는 로스쿨에 대한 여론 악화라는 이해관계 역시 작용하겠지만) 문제가 된 국회의원의 사퇴를 요구한 것도 굳이 따져보자면 여기에 해당한다. 국회를 다 뒤엎어야 한다거나 국회의원을 전부 물갈이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다소 인위적으로 여론의 논리를 분해해본 것은 정치의 역할이 이 두 논리의 사이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치는 저항의 논리로 통치의 당위를 쟁취하는 사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것으로 유명한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 사람들은 그저 변화무쌍한 정치현실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이 말은 정치의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인의 오늘 발언과 내일 발언이 달라도 그것이 ‘정치’ 내에서 소화될 수 있는 건 위에서 언급한 저항의 논리가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며 정치인이 그 여론을 외면할 수 없는 물적 토대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정치세력이 이번 사건으로 의혹이 제기된 국회의원들에 대해 대중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후 정국에서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정치적 냉소주의가 더 심화되면서 이런 조치의 필요성은 더욱 가증됐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조치 이후에 부적절한 청탁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들을 내놓고 여야가 정치개혁을 실제로 이루는데 대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여기에 실패하면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는 다시 확대되고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지금으로서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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